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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Writing

오징어와 춤을...6

by Gomuband 2010.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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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兄은 경찰 헬기를 따돌리고도 계속 고도를 높였다.
서울이 십 원짜리 동전만해지자 급격히 숨이 막혀왔다.
우리 차 옆으로 유성과 인공위성 찌꺼기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내가 숨 참는 걸 포기하고 차 밖으로 왝왝 토하기 시작하자
고무兄은 덮개를 작동시키고 산소를 틀었다.
  "아니 어디를 가시려고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만날 눔들이 있다."
  "왕박사 연구소로 가신다면서요..."
  "하도 도청을 열심히 하기에 페인트 모션 좀 썼다."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알 수 없는 문자가 뜨기 시작했다.
  '&..& #%*@ &&&?'
고무兄도 텔레파시로 답했다.
  'ㅒ..ㅒ @..@'
  '^..^  4## %^^%!!!'
  '!!!'

우리 차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광속으로 우주를 가로 질렸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으...ㅁ'
천천히 눈을 떴다. 뒤통수가 무거웠다. 살짝 옆자리를 보니 고무兄이 없었다.
아주 낮은 고양이 목에서 나는 소리 같은 진동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어디 가셨지?'
차 앞에서 로봇 같은 빨간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빨간 얼굴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무兄이 하던 대로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시도했다.
내가 생각한 내용이 모니터에 그대로 찍혔다.
  '고무兄은 어디 가셨지요?'
  '위를 보세요.'
고무兄은 허공을 자유롭게 거닐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편은 마구 화를 내고 있었지만 고무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열심히 하셨다.
  '뭘 좀 드시겠습니까?'
  '여기는 어딘가요?'
  'ㅎㅎ...당신은 지금 미래로 와있는 겁니다.'
미래라고?  우리가 삽시간에 미래로 왔다고? 알 수 없군...알 수 없어...목이 마른데...
  '맞습니다. 지구 시간으로 3020년 정도 됩니다.'
빨간 얼굴은 내 마음을 읽고 물방울을 하나 손가락 끝에 달아 내밀었다.
  '이걸 먹으라고요?'
  '네. 우린 물을 마시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합성한답니다.'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 난 빨간 얼굴이 내미는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아주 시원하고 그윽한 향이 있는 물방울이었다.
  '이것도 당신이 만든 건가요?'
  '아니에요. 이건 은하수에서 받아 온 물방울입니다.'
은하수 물방울이라...은하수가 진짜 물이 흐르는 개천인가?
  '맞아요...은하수는 별들이 흘린 눈물이 시내를 이룬 것이랍니다.'

  "뭐하냐 짜샤?"
  "이 분이 물을 주셔서..."
  "그 물방울 마셨어?"
  "네...왜요?"
  "ㅋㅋ...아니다...그만 돌아가자."

고무兄은 돌아간다는 말에 슬픈 얼굴을 짓는 빨간 얼굴에게 목례를 하고 차에 올랐다.
빨간 얼굴은 해파리 같은 몸을 살랑이며 우릴 배웅했다.
  '잘 가요...내 사랑...'
  '?????'
  "손이라도 흔들어줘라...네가 앞으로 만날 여자사람의 후손이야."
물방울을 받아먹은 손가락이 어쩐지 낯설지 않더라니...
빨간 얼굴이 앞으로 내가 만날 여자사람의 후손이란다...
점점 머릿속은 혼란해지고 우린 다시 광속으로 우주를 날고 있었다.



멀리 왕박사 연구소의 레이더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무兄은 연구소로 가지 않고 관악산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고무兄의 차가 수직착륙하자 관리인이 얼른 달려와 차 주변에 차양을 쳤다.
  "아까 우주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그 친구 막 화를  내던대요..."
  "별 것 아니다. 작년에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두 동강난 멀미호 얘기를 좀 했다."
  "멀미호와 우주인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멀미호는 알려진 것처럼 카스트롱 선생이 격침시킨 게 아니다."
  "형님!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이런 멍청한 눔...멀미호가 잘려진 부분을 맞춰보면 안다.
   딱 비행접시가 빠져나간 자국 아니냐?"
난 두 동강난 멀미호의 단면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래! 아주 칼로 자른 듯 깨끗이 두 동강 났지. 아무리 천하의 카스트롱 선생이라해도
   면도날어뢰를 만들 순 없는 거야...'
  "내가 막 다그쳤더니 실토하더라. 버뮤다 바닷속에 남았던 고대 잉카유물을 회수하려고
   탐사선을 보냈는데 미쿡 잠수함에서 마구 어뢰를 쏘기에 요리조리 피하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거야. 그런데 솟아오른 그 자리에 멀미호가 있었다는 거지...쯧!"
  "아니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요?"
  "멀미호는 그 시간에 거기에 왜 있었대요?"
  "왕박사와 가카가 팔대강에 뿌려 놓은 로봇 물고기들이 바다로 도망쳐서 세계로 펴진 건 알지?"
  "네...그건 비밀입죠."
  "그걸 쌍끌이 그물로 회수하던 중이었단다."
  "아...일이 정말 커졌었군요."

하늘이 검게 변하면서 비를 쏟아냈다.
비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고무兄의 버릇 때문에 우린 연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자욱한 연기가 가득해져 누가 차에 타고있는지 알 수 없을 즈음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왕박사였다.
고무兄은 나를 남겨 두고 주차장 구석의 왕박사 차로 옮겨탔다.



  "로붓 물고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소."
  "내가 할 소리요. 당신이 내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요?
   괜히 가카께 로봇 줄기세포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신이 로봇 가물치만 풀지 않았어도 내 일이 좀 줄었을텐데..."
  "아니 로봇 물고기를 감시할 기술도 없으면서 어찌 로봇 가물치를 풀지 않을 수 있겠소?
   당신은 로봇 줄기세포만 연구하면 장땡이오? 처음부터 그 로봇 물고기들이 우리 하천에만
   머물러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당신 정말 바보요!"

왕박사는 하천 감시용 로봇 물고기에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자연 진화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로봇이 자연 진화하는 로봇 줄기세포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으나, 예전에 사람줄기세포로 호되게 당한 왕박사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고무兄은 왕박사의 연구를 돕기로 결심하고 우주인들을 협박하여 모종의 물질을 얻어왔고, 왕박사는 그 물질을 변형하여 로봇 물고기에 이식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로봇 물고기는 자연 증식하여 지능을 가지고 바다로 탈출해버렸다.
고무兄은 그 사실을 알고 로봇 가물치를 급히 제작하여 하천에 풀었으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로봇 물고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전세계로 풀린 로봇 물고기들은 에너지원을 얻으려고 해수욕장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미쿡은 도대체 흡혈 로봇 물고기를 누가 만들었나 알아내기 위해 전세계로 정보원을 보냈지만 고무兄의 철저한 보안망 덕택에 아직 가카와 왕박사가 벌인 일이란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각국은 UN에 모여 로봇 물고기를 만든 자들을 찾아내어 영원히 지구에서 추방키로 결의하고 미쿡의 핵잠수함을 동원하여 세계의 바닷속을 샅샅이 뒤지며 로봇 물고기가 보이는 대로 북한산 1번어뢰로 산산조각을 냈으며, 북한의 어렵던 경제사정은 1번어뢰의 대량수출로 말미암아 중국을 능가하는 달러보유국의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번 멀미호 사건도 몰래 도망간 로봇 물고기들을 회수하려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미쿡의 핵잠수함이 쏜 어뢰가 비행접시에 맞는 동시에 멀미호가 반 토막이 났기에 애매한 카스트롱 선생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삼 년간 콘플레이크만 먹고사는 신세가 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가카와 왕박사, 고무兄 밖에 없었다.



  "어쨋든...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소. 내가 카스트롱 선생께는 양해의 메일을 보냈소.
   물론 안주로 드시라고 한우 장조림과 제주 옥돔도 조금 보냈지만..."
  "매번 고무兄께 신세를 져서 미안하구먼요...내 목심이 지나쳤나 봅니다."
  "아...거...지난 번에도 그렇게 된통 당했으면서도 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정말 당신을 알 수 없구려..."
  "......"
  "내가 프로그램을 바꿔 모든 로봇 물고기는 수컷으로, 로봇 가물치는 암컷으로 만들었으니
   이 샘플들을 바로 시험해 보시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당신을 영원히 카스트롱 선생께
   보내버리는 수밖에 없다오."
  "*..*;; 잘 알겠소...



왕박사의 차에 로봇 가물치 샘플이 든 가방을 실어 보내고 우린 늦은 점심을 했다.
고무兄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좋은 일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진리를 어겼기 때문일까?
요새 고무兄 주변엔 계속 어지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고무兄은 세 병째 소주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네가 운전하렴."
고무兄이 키를 던져주었다.
우리가 수직이륙하자 관리인이 차양을 걷어냈다.
고무兄이 파일럿처럼 멋지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내가 만날 여자사람의 후손을 보았기 때문일까?
물방울을 받아먹던 손가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고무兄은 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덮개를 닫고 산소를 적당히 맞춘 다음 그대로 우주로 날아올랐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나는 엔진을 꺼버렸다.
지구 궤도를 돌며 삶과 우주와 시간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태평양 가운데를 지나갈 즈음...차 앞에 초록색 물체가 나타났다.
나는 물체를 피해갈 생각에 엔진을 켜고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으나 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팔이 여러 개 달린 초록색 물체는 천천히 우리 차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 안경과 주머니칼, 차 안의 모든 쇠붙이들이 날아가 차 앞창문에 붙었다.
  '아....이건 엄청난 자력이야...'
초록색 물체는 눈물 같은 것을 흘리고 있었다.
초록색 물체의 텔레파시가 곧 내비게이션 화면에 떴다.
  '왜 당신들은 지구를 사랑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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