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세 편의 소설은...
제가 바랐던 그분의 소박한 모습을 상상하며 작년 6월에 쓴 글입니다.
지금은 온전하고 편안하게 웃고 계시기를 빌며
1주기까지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리겠습니다.
당신이 계신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2.잔 속의 달
뜸하게 오던 입질도 뚝 끊겼다.
캐미라이트도 반쯤 빛을 잃었다.
구름 뒤로 들어가 버린 달은 아예 나올 생각도 않고 있었다.
간간이 보이던 별들도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산을 내려온 차고 무거운 공기는 수로를 메우고 있었다.
큰 물 같았으면 슬슬 대물들이 마실 다닐 시간이었지만 얕은 수로는 작은 찌올림도 아끼고 있었다.
현성이가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봤다.
“옘병...4월에 밤낚시는...하여튼 머리 큰 애들은 이상해.”
“떡밥이나 갈아줘라.”
“니네 선배는 왜 안 오냐?”
나는 눕혔던 의자를 세우고 담배를 붙였다.
“늦으시네...”
4월도 봄이라지만 밤낚시는 조금 일렀다.
시조도 할 겸 바람이나 쐬자고 현성이를 꼬여냈지만 밤붕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입질이 시원찮으면 또 속았다고 난리를 쳐댈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찾은 강화는 옛 강화가 아니었다.
해거름 붕어로 마수걸이는 했지만, 어둠은 빠르게 물속 깊숙이 붕어들을 숨겨버렸다.
‘강화는 이제 편하게 낚시 올 곳이 아니구나...’
대를 들어 채비를 건져냈다.
바늘에 겨우내 삭은 낙엽이 걸려왔다.
봉돌이 찬 걸보니 오늘 밤낚시는 그른 것 같았다.
떡밥에 물과 어분을 조금 더 넣고 부드럽게 개었다.
어분 고린내가 살살 올라왔다.
보리밥알 보다 작게 달아 다시 던져 넣었다.
“30분만 더 기다려보다가 라면 끓여서 소주나 한 잔 하지 뭐...“
“막걸리나 줘봐. 목마르다.”
현성이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다.
3년이나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모르고 지냈다.
우린 졸업하고 10년도 더 지나서 다른 동창의 소개로 만났다.
둘 다 똑같이 기타라는 악기를 다루고 있었다.
사십대 초반에도 우린 음악이란 보따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수선하니까 일도 없어...”
막걸리가 현성이의 목젖을 타고 넘는 소리가 들렸다.
“월급 줄 일은 없잖아.”
“시스템 값 갚아야지...”
현성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은박돗자리에 벌렁 누웠다.
“기계 사지 말고 룸이나 들어갈 걸 그랬나봐.”
“룸도 일 없어. 동현이도 놀고 있잖아.”
“어...이거 뭐야...이슬 내려서 다 젖었네...에이 씨...”
현성이가 투덜대며 돗자리 뒤로 돌아 옆에 와 앉았다.
“동현이 마누라는 돌아왔대?”
투덜이는 막걸리 한 통을 또 집어 들었다.
우린 항상 쪼달렸다.
벌어 놓은 것 없는 우리는 뭐든지 카드로 사들이고 있었다.
현성이는 음향시스템을 장만하느라 카드를 한도 끝까지 긁었고,
나는 녹음장비 구입 때 긁은 카드값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현성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카드값 막기에 진절머리가 나서
다음 생에는 카드 없는 나라에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긴 헤드라이트 불빛이 직각을 그리며 빙 돌더니 우리 쪽으로 머리를 향했다.
논길 초입에서 주춤하던 불빛은 천천히 수로를 향해 다가왔다.
수로 옆까지 바싹 들어온 차가 물 건너편을 훤히 비췄다.
풀밭에 반사된 빛은 물 위로 비스듬히 튕겨 올랐다.
“어 그거 참...불 좀 끄지...입질도 없는데.”
빈속에 들어앉은 막걸리가 현성이 혀를 비비 꼬고 있었다.
투덜이의 말이 날아가 헤드라이트를 꺼버렸다.
떡밥통에 던져 놓은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김형, 도착했는데...어디 계시오?”
“방금 들어온 찬가요? 잠깐 기다리세요. 올라가겠습니다.”
“지금 온 거냐?”
투덜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문형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형님은 안 오셨어요?”
문형이 눈짓으로 논 쪽을 가리켰다.
노형은 소변을 보고 계셨다.
“오셨어요...”
“중간에 설 수도 없고...참고 왔더니 힘듭디다...허허...”
나도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문형도 옆에서 지퍼를 내렸다.
우린 애들처럼 소변으로 칼싸움을 했다.
“그렇게 입고계시면 추우실거에요.”
노형은 얇은 잠바를 입고 오셨다.
“밖에 나오니 조금 춥네요. 뭐...막걸리 한 잔하면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제 잠바를 입으시죠.”
문형이 자기 잠바를 벗었다.
“아니, 아니...그러면 문형도 추운데. 안되지요.”
“형님, 제가 여벌옷이 있으니 갈아입으세요.”
나는 위아래가 붙은 방한복을 꺼내 노형께 드렸다.
문형께는 얇아도 방수가 되는 잠바를 입혀 드렸다.
“이거 영낙 없는 군고마장수군요.”
“따뜻한 게 최곱니다...하하...”
“김형, 이거 하나만 들어주세요.”
문형이 트렁크에서 비닐봉지 보따리 두 개를 꺼냈다.
서울막걸리가 담겨있었다.
“막걸리를 사오셨어요? 제가 다 준비했는데.”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게 낫지 않나요? 하하...”
“안주로 장충동 족발을 가져왔지요.”
족발...
사람들 북적이는 곳에서...
담배연기 가득한 곳에서...
삶을 안주로 편하게 소주 한 잔...
그래...노형은 족발집에 가보신지 오래 되셨을 거야.
투덜이가 올라왔다.
“안 내려오고 뭐하냐?”
“인사드려라 현성아...제 친굽니다.”
“아...네...김현성입니다.”
현성이는 악수하면서 꼭 머리를 긁는다.
“네...반갑습니다...영주 선뱁니다.”
달이 살짝 나와 수로로 내려가는 길을 비추었다.
“족발 사갖고 오셨대.”
“그럼 소주로 가야 되는 거 아냐?”
“입질도 없는데 술상을 볼까요?”
“그래도 낚시터에 왔으니 잠깐 담그고 시작하죠.”
문형은 왼쪽 끝에, 노형은 내 옆자리에, 현성이는 오른쪽에 앉아 낚시를 시작했다.
나는 막걸리를 들고 노형 곁으로 갔다.
“붕어낚시 해보셨어요?”
“우리 자랄 땐 낚시 할 시간도 없었지요. 개울에서 된장 발라 어항 놔본 게 답니다.”
“말씀 낮추세요, 형님...어휴...”
스테인레스 잔에 막걸리를 따라 드렸다.
노형은 항상 존댓말을 하신다.
문형께도 나에게도...
“옛날에는 카바이트등을 켜놓고 낚시를 했는데, 요샌 이렇게 합니까?”
“네...저 초록색불이 케미라이트라는 겁니다.”
난 채비를 들어 올려 찌 끝의 케미라이트를 보여드렸다.
“케미라이트를 살짝 꺾으면 안에 있는 화학성분이 섞이면서 발광을 하지요.
가수들이 공연할 때 객석에서 흔드는 것도 같은 겁니다.”
“재미있군요...담뱃불도 붙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노형께 한 잔 더 따라 드리고 문형 쪽을 보니 익숙한 솜씨로 대를 다루고 계셨다.
“문형도 낚시 좋아하세요?”
“저는 어렸을 때 낙동강에서 많이 해봤습니다. 지렁이는 안 쓰나요?”
“네...저는 떡밥만 쓰거든요.”
“물이 얕고 아직 차네요. 붕어구경은 하셨고요?”
“아침까지 매운탕 꺼리 잡아드릴게요. 들어가서 해 드세요.”
“하하...그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문형은 운전을 해야 하기에 막걸리를 드시지 않았다.
난 버너를 켜고 커피물을 올렸다.
창후리는 강화의 유명한 낚시터였지만 이젠 붕어가 거의 없는 듯 했다.
낮에 보니 낚시꾼들은 그나마 입질이 있다는 상류의 삼거수로에 모여 있었다.
본류에서 갈라진 쪽수로는 물이 마를 때가 많았다.
아직 논에 물을 끌어 쓰지 않아 오늘은 제법 수심이 나왔다.
둑 아래로 갈대가 높이 자라 호젓하고 아늑했다.
수로 뒤 둑에 오르면 넓은 갯벌이 보였다.
가끔 망둥이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소풍을 오곤 했다.
선창 옆엔 새로 문을 연 해수찜질방이 있었다.
노형과 함께 목욕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발가벗고 들어 온 대통령을 사람들은 알아볼까?
서로 인사할 때 사람들은 어디를 가릴까?
구름이 지나가버려 달은 숨을 곳이 없었다.
보름에 가까운 달은 한껏 몸을 부풀렸다.
은박돗자리에 반사된 달빛은 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았다.
들판을 건너온 바람이 뒤에서 내려왔다.
바람은 잔물결을 일으키고 둑을 넘어 바다로 사라졌다.
달빛에 기대어 술상을 봤다.
수로에 담가두었던 소주도 건져냈다.
“이리들 오세요. 한 잔 드시고 하세요.”
문형이 먼저 낚싯대를 거뒀다.
노형도 대를 들어 채비를 거뒀다.
“불을 켤까요?”
“달빛이 좋으니 넉넉합니다. 그냥 드십시다.”
돗자리를 가운데 두고 귀퉁이에 둘러앉았다.
현성이가 막걸리를 따며 말했다.
“선배님들은 부산에서 오셨나요?”
“네...저희들은 고향이 경상돕니다,”
“아...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한 잔 받으세요.”
문형은 커피, 우린 막걸리를 가득 따라 건배를 했다.
족발은 식어도 맛있다.
식으면 육질이 적당히 꼬들꼬들해진다.
새우젓에 살짝 찍은 고깃점에 된장을 찍은 생마늘을 얹고 상추쌈을 쌌다.
“형님 아...하세요.”
“허...쑥스럽게...김형 먼저 드시지...”
노형은 크게 입을 벌려 받아 드셨다.
“김형도 아....하세요.”
문형도 족발쌈을 싸서 내게 주셨다.
“김형...아까 쉬하고 손 닦았습니까?”
사내들은 껄껄대며 웃었다.
영문을 몰라 따라 웃던 현성이가 말했다.
“아니 무슨 선배님들이 영주한테 존댓말을 하세요?”
“나이는 제가 많지만 김형은 제 사붑니다. 그러니 존대를 해야지요.”
“사부요? 니가 뭘 가르쳐 드리는데?”
“기타.”
“기타 레슨?”
“네, 요새 저희 둘 다 김형한테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영주한테 뭘 배우세요...순마구리에요. 저한테 배우세요.”
하하하하....모두 편하게 웃었다.
현성이가 기타를 꺼냈다.
현성이는 기타를 맛나게 친다.
섬세하지 않으나 느낌이 좋고, 부드럽지 않지만 정열이 가득했다.
나는 현성이 기타 소리도 좋아하지만, 대패질 하지 않은 나뭇결 같은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
“뭐야...클래식기타를 가져왔어?”
현성이는 일렉기타를 오랫동안 쳤기 때문에 클래식기타의 넓은 지판을 싫어했다.
띵둥댕둥...튜닝을 대충 하더니 로망스를 치기 시작했다.
노형의 담배연기가 소리를 감싸고 흘렀다.
메이져로 바뀌는 곳에서 술 오른 손가락이 계속 다른 음을 짚어댔다.
“니가 쳐라....”
날이 차서 기타줄이 탱탱해져 있었다.
천천히 다시 줄을 맞췄다.
노형은 달을 향해 비스듬히 의자를 눕혔다.
문형도 편히 다리를 뻗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는 끊어졌던 로망스를 이어갔다.
찬 공기 속에 한 음 한 음 끊이지 않게 이어나갔다.
기타소리가 달빛을 타고 올랐다.
현성이가 소주를 가득 따라 내 앞에 놓았다.
소주 속에도 달이 떠있었다.
달은 스테인레스 잔에 부딪혀 내 눈동자 속에도 달을 만들었다.
달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달은 식도를 타고 흐르며 더운 기운을 뿜어냈다.
한 모금이 덜어졌음에도 달은 여전히 잔 속에 남아있었다.
작게 우는 새소리가 들렸다.
먼 산 위에서 탐조등이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달이 많이 기울었다.
문형이 커피물을 데워 노형께 차를 타드렸다.
막걸리와 섞인 소주가 자꾸 손가락을 무디게 했다.
이슬 맞은 기타를 현성이에게 넘겨주었다.
현성이가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을 부르기 시작했다.
“and then she ask me...do you feel alright....
and I say yes...I feel wonderful tonight....."
나이트클럽에서 같이 일할 때, 우린 매일 원더풀 투나잇을 연주했었다.
현성이의 허스키 목소리에선 위스키 냄새가 났었다.
그 냄새를 맡은 여인들은 바로 취해버리곤 했었다.
사람들은 휘청대는 여인들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난 여인들이 현성이 노래냄새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다시 현성이 목소리에서 그 냄새가 났다.
노형은 울고 있었다.
바싹 기운 달빛이 노형의 눈가를 반짝이게 했다.
뺨으로 흐르는 눈물이 턱에 맺혀 이슬이 되었다.
왜 우세요...
누가 당신을 슬프게 했나요?
제가 당신을 슬프게 했나요?
아냐...영주야...
감사해서 우는 거야...
날 사랑해준 사람들이 고맙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마워서 우는 거야...
난 속으로 울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동현이의 아내 때문에...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현성이 때문에...
짧지 않은 날들을 노형 옆에서 보낸 문형의 우정 때문에...
내가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믿지 못할 무리들 때문에...
아직 정신이 바로 서지 않은 우리나라 때문에...
새벽이 가까웠다.
아침이 오기 전에 노형은 서울로 가셔야했다.
해수탕에서 찜질이라도 하셨으면 했지만, 어두울 때 돌아가시는 게 모두에게 편할 것이었다.
한 잠도 자지 않았지만 피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쉬움이 커갈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헤어지기 전에 우린 포옹을 했다.
노형은 현성이를 따뜻하게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두 사람이 탄 차의 불빛이 아주 멀리 사라질 때까지 우린 멍하게 서있었다.
뒷좌석에 누운 현성이가 먼저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난 짐칸으로 가서 노형이 벗어놓고 간 방한복을 입고 잠을 청했다.
아직도 희미하게 체온이 묻어있었다.
어젯밤에 작게 울던 새가 아침을 물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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