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저에요...
- ???...누구신지...
- $%^^&*...*&^%^ ??
- 아!...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차가 보였다.
남자가 차에서 나와 번쩍 손을 들었다.
창문이 내려가며 빗방울을 지웠다.
여자가 보였다.
- 제가 앞에 갈게요.
비상등을 켠 차와 뒤따르는 차가 연달아 빗물을 튀겼다.
건널목에 섰던 철가방 청년이 악을 썼다.
2.
모든 것이 다 비에 젖어있었다.
바다는 아예 비를 안아주고 있었다.
해변 끝에서 아스팔트 길은 막 검어지는 하늘과 배를 맞췄다.
장어집 앞에 차를 세운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손짓을 했다.
- '괜찮아요?'
여자가 차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우산을 펴고 뒤차로 다가갔다.
여자가 손바닥으로 비를 가리며 차에서 내렸다.
옅은 브라운 선글라스 위로 머리칼이 흩어졌다.
- 해 졌는데...
여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3.
주인 아낙이 아는 체를 했다.
남자는 여자가 자리를 잡는 동안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육지와 하늘과 바다가 모두 하나로 붙고 있었다.
밤이 왔다.
잘 손질 된 장어가 몸을 비튼다.
남자가 소주에 맥주를 섞었다.
찬 맥주가 컵 표면을 뿌옇게 만들었다.
건배하는 여자의 손이 살짝 떨렸다.
여자의 눈이 남자의 목젖을 쫓았다.
여자는 남자가 들이키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액체를 흘려 넣었다.
주인 아낙이 음악을 바꿨다.
남자가 감사하다는 목례를 보냈다.
주인 아낙이 남자 옆자리에 앉아 장어 쓸개주를 한 잔씩 따라주고 일어섰다.
- 장어도 쓸개주를 담네요.
- 그런가 봐요. 전 처음 보는데...
남자가 먼저 쓸개주 맛을 봤다.
- 들어 보세요. 다른 쓸개주랑 비슷해요.
쓸개주를 조금씩 넘기며 여자는 주인 아낙의 말을 곱씹었다.
- '남자들 정력에 좋아요...'
4.
번개가 잠시 밖을 밝혀 바닷가에 와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해수욕장 뒤편의 모텔에도 네온사인이 켜졌다.
주인 아낙이 장어를 잘라 화로 가장자리에 놓았다.
남자가 술을 더 시켰다.
- 참 멀죠?
대답 대신 선글라스 뒤의 눈이 웃었다.
여자가 웃을 때마다 가지런한 이가 살짝 보였다.
- 소주가 순하네요...
여자가 술을 따랐다.
소주잔에 담긴 액체가 천천히 식도를 따라 내려갔다.
- 보고 싶었어요.
- ...
- 아주 많~이.
- 말 낮추셔도 돼요.
남자가 작은 상추에 쌈을 쌌다.
마늘도 작은 걸로 골라서 넣었다.
- 드세요. 이렇게 싸야 장어 맛이 살아있어요.
5.
남자가 주인 아낙에게 매운 양념장을 달라고 했다.
살짝 구운 장어를 간장 발라 한 줄.
고추장 양념 발라 한 줄, 가지런히 불에 올렸다.
- 뭐 생각하세요?
- 아무 생각 안 해요.
- 바다에 자주 오세요?
- 가끔요...아주 가끔...
남자는 장어를 타지 않게 잘 구웠다.
천천히 움직이는 손길에 노련함이 배어있었다.
- 요리 잘하시죠?
- 요리는 누님이 더 잘하시잖아요...
- 전 집에서 하는 요리...
- 하하...그럼 저는 밖에서 하는 요리.
간장을 덧입혀 구운 장어는 달콤하게 녹다가
비릿한 향을 남기고 몸 안으로 사라졌다.
두 병의 소주가 비워졌다.
남자가 화장실 간 사이에 여자는 계산을 했다.
장어집 입구까지 주인 아낙이 배웅을 나왔다.
- 비가 많이 오시네요...
여자는 처마 밑에서 서서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엄지 발가락의 매니큐어가 도드라져 보였다.
- 잘 먹었습니다.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 아! 담배...
6.
남자가 우산을 펴고 여자의 어깨를 감쌌다.
작은 우산은 남자의 왼쪽 어깨와 여자의 오른쪽 어깨를 가리지 못했다.
우산에서 흐른 빗물이 여자의 어깨를 적셨다.
얇은 블라우스는 금세 어깨에 달라붙어 선명한 색이 되었다.
남자가 젖은 어깨에 가만히 입술을 댔다.
바다가 검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풍차모텔은 비를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2층 테라스 밑으로 낙숫물이 선을 그렸다
해수욕장 보안등이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비는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여자가 먼저 테라스 밑으로 올라섰다.
남자가 여자 옆으로 올라섰다.
- 춥지 않아요?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목덜미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남자의 입술을 스쳤다.
7.
남자가 카드를 내밀자 모텔 주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오늘 기계가 고장 났는데...
여자가 지갑에서 오만 원권을 꺼냈다.
- 남은 건 맥주로 주세요.
주인 사내가 냉장고에서 병맥주를 꺼내 양은 쟁반에 올렸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바다가 잠깐 보였다.
남자가 주인 사내의 뒤를 따르고 여자는 남자의 그림자가 되었다.
사내가 복도 끝방의 문을 열었다.
소금기에 살짝 찌든 방 냄새와 욕실의 비누 냄새가 섞여 밀려 나왔다.
- 바다 쪽이 좋으시죠? 편히 쉬세요...
8.
남자가 창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바람 때문에 라이터가 켜지질 않았다.
여자가 담배 두 개비를 붙여 하나를 내밀었다.
- 담배 안 피우신다면서요?
- 끊었어요...하지만 다시 피울 거에요.
- 왜요?
- ...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인 사내가 플라스틱 접시를 들고 있었다.
- 오프너는 TV 옆에 있고요...안주 하시라고...
작은 생선을 말려 달콤한 매운 양념을 발라 구운 것.
남자가 여자에게 접시를 건네고 맥주를 땄다.
- 맛있다...
남자가 천정의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켰다.
노란빛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맥주잔이 노란 그림자를 손등에 만들었다.
여자는 생선포를 문 채 물끄러미 바다를 보고 있었다.
- 한잔 안 해요?
- 으...응...샤워하고요...
9.
- '그를 안으려 하고 있어...'
욕실 창으로 작은 바다가 들어와 몸에 무늬를 그렸다.
샤워 물줄기가 가슴을 간질였다.
가슴골을 지난 물방울이 배꼽을 메웠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바다가 그린 무늬가 점점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남자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가 천천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남자가 여자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여자가 남자의 무릎에 앉았다.
여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10.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흘렀다.
남자의 혀에 물방울이 닿았다.
바닷바람이 가슴을 봉긋하게 부풀렸다.
남자의 혀가 둥글게 항해하고 있었다.
길게 누운 몸이 항로를 정하고 있었다.
나침반이 정확하게 방향을 가리켰다.
남자가 돛을 올렸다.
여자는 파도를 탔다.
골이 깊은 파도의 위아래를 몇 번 타고 넘었다.
남자가 헤엄쳐 와서 손을 잡았다.
함께 파도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랐다.
11.
바닷가에서 먹는 아침에 바닷바람이 반찬으로 올랐다.
여자는 해물이 가득한 백반이 나오자 오랜만에 식욕을 느꼈다.
남자가 굴비구이를 발려 밥 위에 놓아주었다.
맥주잔 속에 여자의 눈이 보였다.
밝고 따뜻한 눈이 웃고 있었다.
아직 이른 여름이라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파도가 지웠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바닷물을 밀어 올렸다.
남자는 천천히 파도 사이를 걸었다.
여자는 바람을 타고 있었다.
가슴에 바람을 가득 안았다.
돛처럼 부풀려진 블라우스가 여자를 띄워 올렸다.
여자는 연이 되어 날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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